** 모든 것이 색깔을 잃은 새하얀 병실이었다. 언제나 햇빛으로 조각한 것같이 반짝이던 머리카락조차 지금은 빛을 잃고 하얀 베개 위에 부스러져 있었다. 거대한 거즈가 얼굴의 한 쪽에 달라붙어 있는 모양새가 기괴할 정도로 섬뜩했다. 핏기를 잃은 입술을 내려 보며 준은 자신의 팔에 머리를 파묻었다. 준이 엘리엇의 팔을 쳐내는 순간 발사된 첫 발은 아슬아슬하게 ...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준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 정말로 일어나야만 하는 시간이다. 그가 샤워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엘리엇은 벽을 향해 돌아 누웠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 뒤집어 써보았지만 얇은 벽은 잔인하게 소리를 통과시킨다. 이내 떨어지기 시작하는 물 소리가 엘리엇의 고막을 때리기 시작한다. 준이 샤워하는 소리에 엘리엇은 침대 밑으로...
쨍그랑. 그 자리에서 샴페인 잔을 바닥에 떨어뜨린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화려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난 유리 잔이 바닥을 어지럽혔다. 눈앞의 상황에 너무 놀란 제임스는 자신의 손에서 유리잔이 떨어진 것조차 몰랐다. 그의 턱은 아래로 떨어진채 제자리로 올라오지 못했다. “세상에...” 저게 대체 뭔 일이야. 제임스의 입이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그가 떨...
발코니로 걸어 나오는 남자를 보는 순간 엘리엇 밀러는 숨을 삼켰다.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남자가 현실에 있었다. 신이 정성을 쏟아 만든 경이로운 피조물이 엘리엇 리치몬드 저 남자라면, 자신은 남자를 만들다 만든 점토 찌꺼기를 대충 섞어다 만든게 틀림없을 것이다. 자신이 준이었다면 아무리 취했어도 저 남자와 자신을 헷갈릴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림자처럼 서...
준을 부른 남자가 가면을 위로 올리며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가면 아래로 신이 정성 들여 빚은 수려한 얼굴이 드러난다. 그가 등지고 서 있는 연회장의 빛이 후광처럼 그를 감싼다. 금으로 만들어진 가면의 색이 일순 바래 보일 정도였다. 준의 피앙세, 엘리엇 리치몬드다. “한참 기다렸는데 안 돌아오길래.” 엘리엇 리치몬드의 시선은 곧바로 준을 향한다. 준이 우려...
리치몬드 가의 메인 홀은 평소와는 달리 손님들로 북적였다. 문턱이 높기로 소문난 고고한 저택의 문이 열리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오늘은 다른 사람도 아닌 류 준의 생일 파티다. 기준에 맞춰 엄선된 각계의 유명인사들만이 리치몬드가의 사자 문장이 박힌 초대장을 받을 수 있었다. 금빛 초대장을 받은 손님들은 자신의 권위가 아직 확고함에 감사하며 ...
최근 제임스에게는 큰 고민이 하나 있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 크고 작은 고민이야 누구나 다 안고 사는 거겠지만 요즘은 정말 회사에 오기 싫을 지경이었다. 그 스트레스의 원인은 바로 상사인 류 준의 피앙세, 즉 엘리엇 리치몬드였다. 준을 만나러 오는 엘리엇 리치몬드는 근래 무서울 정도로 저기압이었다. 물론 엘리엇이 그에게 살가웠던 적은 단 한...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엘리엇은 얼굴을 파묻고 있던 침대에서 머리를 들었다. 기껏 사온 선물도 현관 바닥에 내팽개친 채 그대로다. 그는 비척비척 일어나 불을 켜고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외투도 그제서야 벗었다. 고이 사온 준의 선물을 한동안 내려보던 엘리엇은 한 차례 머리를 젓고 옷장 ...
자리에 앉은지도 벌써 오 분 째였다. 다짜고짜 카페로 데려온 것치고 남자는 대화를 바로 시작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소파에 기대 앉아 엘리엇 밀러를 빤히 쳐다보고 있기만 했다. 면전에서 대놓고 관찰당하고 있는 엘리엇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남자의 정체는 무얼까. 아예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준 정도의 재벌과 몰래 만나고 있으...
안타깝게도 준이 말한 것처럼 영화관에는 가지 못했다. 준을 곤란하게 만들기 싫어 그냥 집에서 보자고 한 것은 엘리엇이었다.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 대신 둘은 엘리엇의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것을 택했다. 여느 연인들이 집에서의 데이트를 즐기는 것처럼. “무슨 영화 볼까요?” 준이 신나게 리모콘을 누르며 영화를 고르고 있었...
띵동. 초인종이 집 안을 울린다. 그라탕을 오븐에서 꺼내던 엘리엇이 서둘러 앞치마를 벗으며 나간다. 종이 울리고 문을 열기까지의 시간은 엘리엇이 집이 작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열리는 사이로 기다렸던 얼굴이 보인다. 준. 반가운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입술을 맞춰온다. 그 입술에 화답하며 준을 집안으로 이끈다.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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